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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릉 영릉 이야기와 함께 돌아보기

by 여행갑부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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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 자리 잡은 영릉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매혹적인 여행을 제공하는 장소입니다. 영릉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전시물들을 살펴 봄으로써 여러분은 풍부하고 역사적인 경험을 할수 있습니다.

 

1.영릉 이야기

영릉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고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장소 입니다. 영릉은 조선 4대왕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입니다. 영릉은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입니다.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대왕,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습니다. 원래 영릉은 1446(세종 28)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의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때 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예종 1)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습니다.

 

1) 세종 이야기

세종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1397 준수방 본궁에서 태어났습니다. 1408(태종 8) 충녕군에 봉해졌고, 1412(태종 12)에 충녕대군이 되었습니다. 1418(태종 18) 큰형 양녕대군이 왕세자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두 달 뒤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세종은 즉위 후 이듬해 집현전을 설치하여 많은 학자들을 등용하였으며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세종이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집현전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내시로 하여금 누가 밤늦도록 집현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지 보고오라 명하였습니다. 이에 내시는 신숙주가 홀로 독서하고 있다 아뢰었습니다. 세종은 그 말을 듣고 친히 집현전에 나가 그 광경을 살폈으나, 신숙주는 세종이 온 것을 모르고 계속 독서에 열중 하였습니다. 세종은 새벽이 되도록 밖에서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다 신숙주가 고단하여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 추운 날씨에 독서에 열중한 신하에게 자신의 어의를 벗어 덮어주고 돌아 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깨어난 신숙주가 자신의 등에 씌워진 어의를 보고서야 전날 밤 왕이 행차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복하여 왕의 침전을 향해 절을 하였으며 더욱더 학문연구에 열중하였다고 합니다. 세종은 재위기간 동안 혼천의 등 과학기구를 발명하였고, 쓰시마 섬을 정벌하였으며 4 6진을 개척하여 조선의 국경을 확장하였습니다. 또 여러 활자를 제조하여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고, 국가의례를 정비하였습니다. 그리고 1446(세종 28)에는 우리나라 고유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등 정치·경제·문화·과학·군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후 1450년 영응대군 사저인 동별궁에서 5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소헌왕후 이야기

소헌왕후 심씨는 본관이 청송인 청천부원군 심온과 삼한국대부인 안씨의 딸로 1395(태조 4)에 출생 하였습니다. 1408(태종 8) 충녕군이었던 세종과 혼인하여 경숙옹주에 봉해졌고, 1417(태종 17) 삼한국대부인이 되었다가 1년 뒤에 세종이 왕세자로 책봉되자 왕세자빈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공비가 되었고, 1432(세종 14)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소헌왕후는 세종 즉위 초 태종의 외척세력 견제로 인해 친정이 화를 입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 심온과 작은아버지 심정이 사망 하였습니다. 이때 소헌왕후 본인도 폐위될 뻔하였으나 세종의 보호로 무사하였습니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82를 낳았으며, 1446(세종 28)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의 사저에서 5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종은 매우 슬퍼하며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부처님과 그 가족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책을 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수양대군은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보, 법화경 등에서 일부를 발췌하고 한글로 옮겨 석보상절을 편찬하였습니다. 이를 받아본 세종은 직접 석보상절의 내용을 한글 노랫말로 옮겨 악장체 월인천강지곡을 만들었습니다.

 

2. 영릉의 전시물

여러분이 영릉 단지에 들어서면, 여러분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왕릉의 광경에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섬세하세 조경된 주변 환경은 역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합니다. 무덤들은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울창한 숲이 우거진 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 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봉분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이 거대한 봉분은 왕과 왕비의 영원한 유산을 상징하는 "석병"이라고 알려진 장엄한 돌 조각들로 덮여 있습니다. 각각의 석병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풍기는 복합적인 분위기와 경건함은 보는 이의 경외심이 들도록 합니다.

2) 석조전은 조선 왕조의 건축적인 우수성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한국 건물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와 관련된 광범위한 유물과 역사적인 물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글이라는 문자를 창안 한 세종대왕의 문서인 "훈민정음"과 같은 훌륭한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글의 발전, 한글의 중요성, 그리고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3) 어진상선 :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초상화를 전시한 어진상선.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이 초상화들은 그 시대의 진정한 우아함과 의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옷과 얼굴 표정의 복잡한 세부 사항들은 그 시대의 예술적인 재능에 대한 증거입니다.

4) 종묘 :  조상 숭배와 전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묘입니다. 그 사당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의식이 행해졌습니다. 왕실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던 역사적인 의식과 관습을 돌아 볼수 있습니다.

5) 왕실의 물품 여행을 마치기 위해, 우리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개인 물품과 소지품을 전시하는 왕실의 물품 전시회에 도착합니다. 그들의 일상과 취향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의류, 보석 그리고 일상용품을 포함합니다.
주목할 만한 유물 중 하나는 세종대왕 때 사용되었던 왕실 전용 마차인 "정족"입니다. 이 마차는 웅장함과 복잡한 장인 정신은 조선 왕조의 풍요로움을 입증합니다.

 

3. 총평

여주에 있는 영릉은 단순한 관광지 이상입니다; 그것은 풍부한 역사와 문화 유산을 보여주는 포탈입니다. 장엄한 왕릉부터 꼼꼼하게 선별된 전시물까지, 영릉의 구석구석은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 애호가든, 문화 애호가든, 단순히 번화한 도시 생활에서 평온한 탈출을 추구하든, 영릉은 과거에 대한 깊은 감사와 새로운 경이로움을 남길 수 있는 필수 방문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여주 영릉 방문을 계획하고 역사와 문화의 매혹적인 세계에 여러분을 몰입하세요. 조선 왕조의 보물들을 탐험하고 평생 지속될 추억들을 만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여러분의 영릉 여행은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풍부하게 할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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